여연경 작가 : 예술로 정신질환을 표현하는 방법은 어떤 것 같나요? 제일 좋은 감정 배출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?
노현재 작가 : 저는 예술이 감정과 고통을 표현하고, 동시에 그것을 다룰 수 있는 굉장히 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. 왜냐하면 예술은 ‘무엇을 느끼는가’뿐만 아니라 ‘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’를 스스로 발견하게 해주거든요. 꼭 미술이나 음악처럼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. 낙서를 하거나, 의미 없는 단어를 반복해서 쓰거나, 남이 보지 못할 일기를 쓰는 것도 충분히 예술의 일부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. 감정을 그대로 쏟아내는 해소도 중요하지만, 그것을 표현 가능한 무언가로 바꾸는 과정에서 우리는 감정을 다시 소화하게 됩니다. 그래서 예술은 정서적 해소를 넘어 자기이해의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.
가장 좋은 감정 배출 방법은 결국 ‘내가 지속 가능한 방식’이라고 생각합니다.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으면서, 반복해도 죄책감이 남지 않고, 그 안에서 스스로를 좀 더 이해하게 되는 방법이요. 누군가에게는 그게 운동일 수도 있고, 요리일 수도 있고, 일기일 수도 있습니다. 저에게는 글쓰기와 사람과의 대화가 그런 도구였습니다.
여연경 작가 : 수험생 시절 학업 스트레스를 어떻게 극복하셨고, 지금 생각해보면 그 방법이 괜찮았다고 생각하시나요?
노현재 작가 : 사실 저는 수험생 시절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은 많지 않습니다. 공부 자체도 어느 정도 좋아했고, 성취감도 있었고,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순간이 너무 좋았거든요. 칭찬을 들으면 이상하리만치 신이 나서, 오히려 ‘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?’를 고민하며 공부에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.
단순히 공부를 좋아했다기보다는, ‘잘하고 싶다’는 욕망이 강했어요. 성취는 곧 애정을 얻는 방식이었고, 그게 저를 몰입하게 만들었죠. 돌이켜보면 그것이 무조건 건강한 동기는 아니었지만, 당시에는 그게 저를 지탱하는 힘이었어요.
물론 힘들 때도 있었지만, 그럴 땐 학교 수업을 땡땡이 치고 플스방에 가서 게임을 하거나, 친구들이랑 닭꼬치 먹으러 나가면서 그냥 털어버렸어요. 그정도만으로도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. 그래서 그때가 그립기도 하구요. 요즘엔 비싼 걸 사도, 해외 여행을 가도 스트레스가 잘 안풀리는 것 같아서요. 오히려 그 때의 저는 별다른 전략이나 거창한 스트레스 관리법 없이, 그때그때 기분을 바꾸는 단순한 방식으로도 잘 푸는 건강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.
여연경 작가 : 이 책을 어떤 질환이나 성격을 가진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으신가요?
노현재 작가 : 저는 이 책이 특정 질환으로 범주화된 사람들만의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. 경계성 성격장애나 조울증이라는 진단명을 가진 분들께는 물론 깊이 와닿을 수 있겠지만… 진단명이 중요한 게 아니라, 자신의 속 깊은 곳의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 책에서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. 그런 점에서 저는 이 책이 자주 무너지지만 포기하지 않고, 자신을 좀 더 이해하고 싶어하는 모든 분들께 닿았으면 좋겠습니다.
여연경 작가 : 영원하지는 않지만 평생 존재할 수 있는 긍정적인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?
노현재 작가 : 저는 “관계의 감각”이라고 생각합니다. 어떤 사람은 시간이 지나고 물리적으로 멀어지더라도, 그 사람이 내게 남긴 감정의 결은 사라지지 않습니다. 함께 웃었던 순간, 따뜻한 말 한마디, 눈빛 하나까지도 내 안에 고요히 남아 살아 있죠. 그 감각은 다시 만나지 않아도, 연락이 끊겼다 해도, 여전히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됩니다.
관계는 결국 감각의 형태로 기억에 남습니다. 그것은 어떤 말보다 더 오래 지속되고, 어떤 설명보다 더 깊이 스며듭니다. 힘들 때 문득 떠오르는 사람의 표정, 내게 위로를 건넸던 목소리처럼요. 그런 감각은 때로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, 아무도 모르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도 합니다.
영원히 지속되는 관계는 없을 수 있어도, 그 관계에서 비롯된 감각은 평생 내 곁에 머물 수 있다고 믿습니다. 저는 그걸, 영원하지는 않지만 끝내 사라지지 않는 긍정적인 것이라고 하고 싶네요.
여연경 작가 : 정신과 진료에서 공감 말고 환자에게 어떤 말을 건네시나요?
노현재 작가 : 공감은 면담에서 참 중요한 것 같아요. 하지만 공감만으로는 환자가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는 힘을 얻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. 저는 진료실에서 가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.
“지금 이 말이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, 그래도 저는 이 이야기를 드리고 싶어요.”
이렇게 말하면서, 내가 진심으로 믿는 말, 그 사람에게 필요한 말, 그리고 함께 겪어온 이야기에 기초한 말을 조심스럽게 건넵니다. 때로는 그것이 조언일 수도 있고, 때로는 ‘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’는 정중한 의견일 수도 있어요. 중요한 건 ‘내가 당신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’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. 공감만으로는 닿지 못하는 깊이에, 그런 진심이 조심스럽게 닿는다고 믿습니다.
마무리하며–
8월의 글을 지으며, 작년에 살던 저의 의견, 감정, 노력을 다시 보게 되었어요.
저는 <우울 파르페>가 정신질환자 분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해왔거든요.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어보니 학벌주의에 빠져있는 분들, 가벼운 우울로 싱숭생숭한 분들에게도 어쩌면 감정에 관심이 많은 분들께도 좋은 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. 제 감정이 어떤지도 적혀있지만 학벌에 대한 스트레스가 은근히 계속 드러나더라고요.
반면에 극도로 자살사고에 빠진 분들에게 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심스러워 지기도 했어요. 바로 어제 제가 자살사고가 너무 심해서 제 책을 읽어봤는데, 마지막장에 있는 글이 그저 살아가자는 이야기였거든요. 그런데 정작 글을 쓴 본인인 제가 그 글을 읽을 때는 도저히 그 글대로 하지 못하겠어서 저와 같이 느끼신 독자분들이 계실까봐 조금 아프기도 했어요.
우울함은 정말 누구든 느낄 수 있는 감정이잖아요. 각자 해소하는 방법은 다르겠지만, 정말 어떻게 우울을 해소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, 제 글을 읽고 우울이 조금이나마 해소가 되길 바라요. 우울은 정말 모든 사람이 느끼지만요. 가장 감추는 감정 같기도 해요. 저는 제 우울을 감추지 않을테니, 기꺼이 공감을 얻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.
지금의 계절인 여름은 해가 길고 밤이 짧지만, 계속 밤에서 사시는 분들도 계실 거란 생각이 들어요. 저도 해결하지 못 한 일이라 해드릴 수 있는 것은 공감뿐이지만 부디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. 우울하지 않은 분들도요.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니까요. 그리고 꼭 나으라는 강박은 드리지 않겠습니다. 그냥 건강하길 바랄게요.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분들께. |